
내가 국가적 경제 위기를 처음 체감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이후 2000년대 초 벤처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9년 코로나 위기까지 여러 번의 큰 파도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불황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기업이라도 이 앞에서는 몸을 낮춰야 한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은 사업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전쟁’을 꼽았다. 일제강점기의 중일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의 사업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모든 것을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의 경제 위기는 덜 참혹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거대한 외부 충격 앞에서 기업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경기에는 분명한 추세가 있다. 특정 산업이 일시적으로 호황을 누릴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 단위, 세계 단위의 불황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이럴 때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다. 이기려 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 흐름을 인정하고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간혹 불황 속에서도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인력을 확장하는 경우를 본다. 극소수는 훗날 성공 사례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모한 도박에 가깝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황은 용기로 돌파할 대상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커졌다. 거시경제의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지금은 공격의 시간이 아니라 긴축의 시간이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지출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 채용 역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멈춰야 한다. 대표부터 말단 직원까지 조직 전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조직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
어둠이 가장 짙을 때 새벽은 온다. 지금을 제대로 버틴 기업은 이후 몇 배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반대로 허세를 부리고 현실을 외면한 기업은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확장의 시간이 아니다. 생존의 시간이다.
